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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의는 아니었다" — 정용진이 직접 머리 숙인 날, 우리가 진짜 봐야 할 것

by 하디슈흐 2026.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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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5월 26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024년 회장 취임 이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장 단상에 올랐습니다. 대국민 사과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일의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멸공' 논란 때도, 빌드업코리아 후원 때도 끄떡없던 정용진 회장이 굳은 표정으로 머리를 숙인 모습은 그 자체로 이번 사태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과와 함께 공개된 내부 감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과 이면에 훨씬 더 복잡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 오늘 발표된 내용 — 핵심 정리

1) 정용진 회장의 대국민 사과

정 회장은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 박종철 열사 유가족, 광주 시민, 그리고 국민에게 "신세계그룹 회장으로서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밝혔습니다. 사과문에서 이유를 불문하고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고 강조했으며, 다만 전국 매장에서 일하는 스타벅스 파트너(직원)들에게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2) 일주일간의 내부 감사 결과

신세계그룹은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9일부터 일주일간 커머스팀 전원과 결재라인 등 총 15명을 대상으로 휴대폰·노트북 포렌식 분석과 교차 심문을 실시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고의성을 입증할 명확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입니다.

직원들은 기존 텀블러 홍보 문구인 '가방에 쏙'과 운율을 맞추다가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을 만들었고, 다른 제품 문구인 '한손에 착'은 생성형 AI에게 추천받아 정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탱크'라는 이름은 대만 제조사가 물탱크에서 영감을 받아 붙인 원래 제품명이었고, 503ml 용량도 17온스를 환산한 수치일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3) 드러난 시스템의 민낯

고의가 아니라는 해명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내부 시스템의 실태였습니다.

이번 마케팅은 팀장 → 담당 → 본부장 → 대표이사까지 4단계 보고 절차를 거쳤는데, 이 과정에서 단 한 명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합의자 7명 중 일부는 디자인 시안이 첨부된 메일의 파일조차 열어보지 않고 관행적으로 승인했습니다. 과거에는 거쳤던 법무팀 검토 절차도 이번에는 생략됐습니다.

5월 18일이라는 날짜에 '탱크'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7명의 결재자 중 아무도 "이거 괜찮나?"라고 묻지 않은 것입니다.

4) 밝혀지지 않은 것들

감사에는 명확한 한계도 있었습니다. '탱크데이'라는 이름을 처음 제안한 직원을 포함한 커머스팀 팀원 3명이 휴대폰 제출을 거부했습니다. 사내 메신저 대화 기록은 서버에 일주일만 보관되기 때문에 최초 기획 단계의 대화 내용은 확인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논란 직후 일부 직원이 "정신이 이상하네? 왜 저렇게 생각하지?"라며 비판 여론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대화를 나눈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신세계 측은 이를 "부적절한 언행"으로 인정하면서도, "사전 모의나 고의성을 입증할 정황은 아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 "고의가 아니라면, 그게 더 무서운 것 아닌가?"

솔직히 말해서, 오늘 감사 결과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한쪽에서는 "진짜 몰랐을 리가 없다"는 의심이 여전합니다. 하필 5월 18일에, 하필 '탱크'와 '책상에 탁'이라는 조합이, 하필 동시에 나왔다는 것을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입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설령 진짜 몰랐다면, 그게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한민국에서 사업하는 대기업의 마케팅팀 직원이, 4단계 결재라인의 임원들이, 5월 18일과 '탱크'와 '책상에 탁'의 조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짜 몰랐다면 — 그것은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역사 교육이 얼마나 실패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의든 무지든, 결과는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았고, 민주화운동의 가치가 가볍게 소비됐습니다.


📉 숫자로 보는 8일간의 타격

탱크데이 사태가 벌어진 5월 18일부터 오늘까지 8일. 그 사이 벌어진 일들의 규모는 상상 이상입니다.

경영진 측면에서는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가 해임됐고, 담당 임원도 해임됐으며, 실무 관여 직원 5명이 직무 배제됐습니다. 정용진 회장 본인은 경찰에 모욕 및 명예훼손 혐의로 피의자 입건까지 됐습니다.

기업 가치 측면에서는 이마트 주가가 나흘 연속 하락했고, 신세계푸드는 하루 만에 10% 넘게 급락했습니다. 전상진 부사장은 오늘 기자회견에서 "굉장히 많은 매출 감소가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사회적 파급에서는 행정안전부가 사실상 기관 차원의 불매를 선언했고, 광주시와 시민단체는 신세계 측의 사과 면담 자체를 거부했으며, 5·18 유공자들은 정용진 회장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스타벅스 미국 본사까지 공식 사과문을 냈습니다.

텀블러 하나 파는 행사에서 시작된 일이, 회장의 피의자 입건과 정부 차원의 불매 선언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 경찰 수사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신세계의 자체 감사는 "고의성을 입증할 근거를 못 찾았다"로 결론 났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가 정용진 회장과 손정현 전 대표 등을 모욕 및 명예훼손 혐의 피의자로 입건하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 제출한 고소장을 기반으로, 경찰은 주말에도 수사를 진행하며 추가 고소인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신세계 자체 조사에서 3명의 직원이 휴대폰 제출을 거부했고, 사내 메신저 기록이 일주일 만에 삭제되는 구조라는 점도 경찰 수사의 주요 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신세계 측은 "경찰 조사에서 고의성이 확인되면 해당 직원을 즉시 해고하고 민형사상 책임까지 묻겠다"고 밝혔습니다.


💡 이 사태가 던지는 세 가지 질문

첫째, 기업의 '검수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았나?

4단계 결재, 7명의 합의자, 그런데 아무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첨부파일도 안 열어보고 승인하는 관행, 법무팀 검토 생략 — 이것은 스타벅스코리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의 수많은 기업에서 마케팅 콘텐츠가 얼마나 허술하게 검수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SNS 시대에 마케팅 한 건이 기업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모든 기업이 오늘 다시 배워야 합니다.

둘째, 우리 사회의 역사 감수성은 충분한가?

만약 신세계의 설명대로 직원들이 정말 5·18과의 연관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개인의 무지가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입니다. 교과서에 적힌 역사와 가슴으로 느끼는 역사 사이의 간극이 이토록 크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기업 차원의 역사·인권 감수성 교육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셋째, 사과는 언제 '진짜 사과'가 되는가?

정용진 회장은 오늘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진상조사 결과는 "고의가 아니었다"는 해명에 가까웠습니다. 사과와 해명이 한 무대에서 동시에 나오면, 국민은 그것을 사과로 받아들일까요, 변명으로 받아들일까요?

진정한 사과는 말이 아니라 이후의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신세계가 약속한 리스크 관리 체계 재건, 전 임직원 역사 교육, 경찰 수사 협조가 실제로 이행되는지를 지켜봐야 합니다.


📝 마무리 — 텀블러 한 개가 바꾸고 있는 것들

8일 전, 스타벅스 온라인 스토어에 텀블러 할인 행사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8일 후, 대한민국에서 네 번째로 큰 유통그룹의 회장이 기자회견장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이 사태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경찰 수사가 남아 있고, 불매운동의 향방도, 4조 원이 걸린 광주 사업의 미래도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역사의 무게를 모르는 마케팅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 대한민국 기업사에서 이보다 생생한 사례는 앞으로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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